중국 정부가 전기 자동차(EV) 배터리 안전에 대한 전례 없는 수준의 규제 강화해 '화재·폭발 제로' 시대를 예고했다. 17일 카뉴스차이나에 따르면, 중국 공업정보화부(MIIT)는 오는 2026년 7월 1일부터 시행될 '전기 자동차의 전력 배터리에 대한 안전 요구 사항'(GB38031-2025) 개정안을 확정했다. 핵심 내용은 전기차 배터리가 더 이상 화재나 폭발의 위험을 초래해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이는 소비자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강력한 조치로 평가된다.
이번에 발표된 개정된 안전 기준은 기존의 규정을 훨씬 뛰어넘는 엄격한 요구 사항을 담고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내부 열 폭주 발생 후에도 배터리가 화재 및 폭발을 방지해야 한다'는 세계 최초의 기준이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전기차 화재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되는 배터리 셀 내부의 이상 반응으로 인한 열 폭주 현상 자체를 억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에 따라 2026년 중반부터 모든 전기차 제조업체는 새로운 '열 확산 방지 테스트'를 의무적으로 통과해야 한다. 기존 표준에서는 화재나 폭발 발생 최소 5분 전에 탑승자에게 경고하는 시스템만 요구되었으나, 새로운 규정은 기술적인 측면에서 훨씬 더 높은 수준을 요구한다. 배터리 제조업체는 이제 배터리 팩에 불이 붙거나 폭발하지 않아야 하며, 혹시 모를 연기 발생 시에도 차량 내부의 승객에게 어떠한 위협도 되지 않음을 입증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강화된 규정은 다양한 상황에서의 배터리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새로운 테스트 항목들을 추가했다. 차량 충돌 시 배터리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한 '하부 충격 테스트'는 최근 셀-투-바디(Cell-to-Body) 설계와 같이 배터리가 차량 구조의 일부로 통합되는 추세에 맞춰 중요성이 더욱 강조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배터리는 300회의 급속 충전 사이클을 견딘 후에도 단락 테스트를 통과해야 하는 등 극한의 사용 환경에서도 안전성을 확보해야 한다.
업계 전문가들은 중국 정부의 이 같은 강력한 규제 강화가 장기적으로 소비자 안전을 크게 향상시키는 것은 물론, 전기차 배터리 산업의 재편을 촉진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이미 CATL과 같은 선두 배터리 제조업체들은 자체 열 폭주 방지 기술(예: CATL의 "No Thermal Propagation(NP)" 솔루션)을 확보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기준을 충족하기 위한 연구 개발 비용은 중소 배터리 기업들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이는 결국 기술 경쟁력을 갖춘 소수의 기업 중심으로 시장이 통합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 정부의 이번 조치는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중국의 새로운 안전 기준은 향후 다른 국가들의 관련 규정 제정에도 중요한 참고 사례가 될 수 있으며, 글로벌 배터리 기술 경쟁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이정태 글로벌모빌리티 기자 jt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