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가상과 현실 넘나드는 R&D 혁신"...시공간 허문 미래 모빌리티 심장, '현대차·기아 남양연구소'
- 성 남양연구소 디지털 전환 현장을 가다...설계부터 품질 측정까지 실물 없는 개발 시대 활짝
- 가상과 현실 넘나드는 R&D 혁신 현장...랩투어로 엿본 현대차·기아의 압도적 기술력
- 적층 제조부터 디지털 측정까지 4대 핵심 랩투어...세계 최고 향한 끊임없는 담금질에 '자부심'
쇳물이 끓는 용광로나 시끄러운 프레스 기계 소리 대신, 모니터 속 방대한 데이터와 가상 현실이 자동차를 빚어내고 있었다. 지난 1일 방문한 경기도 화성 소재의 현대자동차·기아 모빌리티 산실, '남양기술연구소' 얘기다.
SDV(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 시대가 도래하며 자동차는 끝없이 진화하는 스마트 기기가 됐다. 과거의 개발 방식으로는 기하급수적으로 복잡해지는 전기·전자 아키텍처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 이에 남양연구소는 '디지털 혁신'이라는 승부수를 띄웠다. 기자는 이날 A그룹에 속해 적층 제조 솔루션 센터, 노바랩, 드라이빙 시뮬레이터, 디지털 측정 센터 순으로 랩투어를 진행했다. 양산차의 실물을 만들기 전 가상 공간에서 모든 것을 검증해 내는 마법 같은 현장을 둘러보며, 대한민국 자동차 기술의 현주소에 묘한 자부심마저 차올랐다.
■ 쇳물과 금형의 시대는 끝났다, 적층 제조 솔루션 센터(AMSC)
이미지 확대보기현대자동차·기아 남양기술연구소 '적층 제조 솔루션 센터(AMSC)'. 사진=현대자동차그룹
랩투어의 첫 목적지는 30년 만에 신축된 AMS동에 자리한 '적층 제조 솔루션 센터'였다. 쉽게 말해 산업용 3D 프린팅 기술로 부품을 만들어내는 곳이다. 현장에서 만난 한강희 팀장은 "기존 절삭 가공이 비누 덩어리를 깎는 것이라면, 적층 제조는 찰흙을 한 층씩 쌓아 올리는 것"이라고 알기 쉽게 설명했다.
가장 먼저 기자의 눈길을 끈 것은 클래식카 '포니'의 사이드 실 부품이었다. 실제 부품을 3D 스캔해 자외선으로 레진을 굳히는 광중합 방식으로 질감까지 완벽하게 복원해 낸 상태였다. 옆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로봇 팔이 불꽃을 튀기며 금속을 쌓아 올리는 WAAM(와이어 아크 적층 제조) 설비가 위용을 드러냈다. 금형 없이 곧바로 거대한 차량용 모터 하우징을 정교하게 쌓아 올리는 모습은 경이로웠다.
이미지 확대보기현대자동차·기아 남양기술연구소 '적층 제조 솔루션 센터(AMSC)'. 사진=현대자동차그룹
4층으로 올라가니 금속 분말을 레이저로 녹여 쌓는 세계 최초 도입 설비들이 가동 중이었다. 이 기술은 복잡한 모터스포츠용 경량 부품이나 단종 모델의 A/S 부품까지 거뜬히 만들어낸다. 단순히 모양만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인장강도와 충격 평가까지 사출 부품과 동일한 잣대로 철저히 검증하는 모습에서, 품질을 향한 남양연구소의 깐깐한 고집을 엿볼 수 있었다.
■ 보이지 않는 오류를 잡는 개방형 제어기 검증실, 노바 랩(NOVA Lab)
이미지 확대보기현대자동차·기아 남양기술연구소 '노바 랩(NOVA Lab)'. 사진=현대자동차그룹
두 번째로 향한 곳은 차세대 개방형 제어기 검증실인 '노바 랩'이다. 이곳엔 완성된 자동차 대신 뼈대 위에 수백 개의 제어기와 배선(와이어링)이 복잡하게 얽힌 '와이어카(Wire-car)'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미지 확대보기현대자동차·기아 남양기술연구소 '노바 랩(NOVA Lab)'. 사진=현대자동차그룹
대형 차종 하나에 들어가는 제어기만 300~500개에 달하는 시대다. 조립이 끝난 실차 상태에서는 내부 오류를 찾아내기 어렵지만, 와이어카 상태에서는 모든 통신과 기능 검증이 투명하게 이뤄진다. 현장에서 통합 전원 장치로 과전압 등 가혹 조건을 설정해 외기온 센서를 조작하자, 실내 연구실임에도 계기판에 영하의 온도가 찍히며 즉각 경고등이 점등되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이미지 확대보기현대자동차·기아 남양기술연구소 '노바 랩(NOVA Lab)'. 사진=현대자동차그룹
단순히 멈춰있는 상태만 검증하는 것이 아니다. 차륜 구동 부하 장치와 레이더 신호 생성기(RTS)를 물려 실제 도로를 달리는 것처럼 속이고,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SCC)부터 전방 충돌 방지 보조(FCA)까지 ADAS(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 기능을 차례로 시연해 냈다. 신차 한 대 개발 시 와이어카 단계에서 미리 잡아내는 오류만 평균 150~200건. 완벽한 SDV 시대를 준비하는 든든한 방어선이었다.
세 번째 코스는 투어 중 가장 역동적이었던 '드라이빙 시뮬레이터 스튜디오'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운전석을 감싸고 있는 270도 화각의 거대한 곡면 스크린이 압도적인 몰입감을 선사했다. 실제 특수 제작된 콕핏의 차량 도어나 실내 센터페시아 등은 제네시스 G80 것을 적용한 모습이었다. 스크린에도 G80의 모습으로 나온다.
연구원이 카본으로 특수 제작된 콕핏(운전석)에 올라 가속 페달을 밟자, 거대한 기계 장치가 굉음을 내며 전후좌우, 상하로 맹렬하게 요동쳤다. 코너를 돌 때 쏠리는 원심력부터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의 미세한 노면 진동까지 6자유도(6DOF) 모션 시스템이 실시간으로 완벽하게 모사하고 있었다. 스티어링 휠과 시트, 페달은 실제 양산 부품을 그대로 달아 현실감을 극대화했다.
놀라운 점은 화면 속 가상 도로가 단순한 3D 그래픽이 아니라는 것이다. 남양연구소 주행시험장을 1mm 단위로 정밀 스캔해 아스팔트 질감까지 데이터로 구워냈다. 세계 최초로 적용된 '지형 서버' 기술 덕분에 방대한 데이터임에도 지연 현상 하나 없이 부드러운 주행이 가능했다. 시작차(Prototype)를 만들지 않고도 독일 뉘르부르크링 서킷을 질주하며 세팅을 바꿀 수 있는 이곳은, 개발 기간 단축과 주행 성능 육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었다.
■ 0.1mm의 오차도 허락하지 않는다, 디지털 측정 센터(DMC)
이미지 확대보기현대자동차·기아 남양기술연구소 '디지털 측정 센터(DMC)'. 사진=현대자동차그룹
랩투어의 대미를 장식한 곳은 차량의 치수 품질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디지털 측정 센터'였다. 아주 미세한 단차 하나가 풍절음이나 누수를 유발하고, 결국 고객의 감성 품질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이미지 확대보기현대자동차·기아 남양기술연구소 '디지털 측정 센터(DMC)'. 사진=현대자동차그룹
이미지 확대보기현대자동차·기아 남양기술연구소 '디지털 측정 센터(DMC)'. 사진=현대자동차그룹
현장에는 센서가 직접 접촉해 1,000개의 좌표값을 읽어내는 3차원 측정 장비(CMM)들이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작업자가 직접 부품을 옮길 필요도 없다. 자율주행 로봇(AMR)이 부품을 나르면 로봇 팔에 달린 3D 스캐너가 순식간에 형상을 읽어 들였다.
이미지 확대보기현대자동차·기아 남양기술연구소 '디지털 측정 센터(DMC)'. 사진=현대자동차그룹
이미지 확대보기현대자동차·기아 남양기술연구소 '디지털 측정 센터(DMC)'. 사진=현대자동차그룹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무빙 동적 검증장'이었다. 작업자가 차량 문을 쾅 닫자, 초당 500회를 찍는 초고속 카메라와 센서가 사람 눈엔 보이지 않는 순간적인 철판의 변형량까지 정밀하게 잡아냈다. 이렇게 모인 방대한 데이터는 문제 발생 시 원인을 역추적하는 'DATA-AUDIT'에 쓰인다. 보이지 않는 곳의 품질까지 데이터로 통제하는 집요함이 오늘날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경쟁력을 만들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이미지 확대보기현대자동차·기아 남양기술연구소 '디지털 측정 센터(DMC)'. 사진=현대자동차그룹
한편, 반나절 간의 남양기술연구소 랩투어는 단순히 '차를 잘 만든다'는 수사를 넘어, 그 이면에 얼마나 처절하고 혁신적인 R&D 과정이 숨어있는지 증명하는 시간이었다. 모든 랩의 공통된 목표는 명확했다. 가상 공간과 데이터로 개발 속도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되, 검증의 기준은 현실보다 더 가혹하게 가져간다는 것.
어떤 자동차도 처음부터 완벽할 순 없다. 끝없는 시험과 개선을 통해 완성될 뿐이다. 남양연구소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열정은 이미 미래 모빌리티의 기준을 새롭게 정립하고 있었고, 남양연구소의 혁신은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