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가 일상이 된 지금, 차의 성격은 점점 “조용함”으로 수렴한다. 하지만 모든 운전자가 같은 미래를 원하진 않는다. 가속 페달을 밟는 순간 즉각적으로 차체를 밀어 올리는 압력, 기계가 공기를 삼키고 불을 붙이는 과정이 만들어내는 박동, 그리고 그 모든 감각을 귀로 확인하는 배기음. ‘탈것’이 아니라 ‘본능’을 일깨우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내연기관은 아직도 가장 효과적인 언어다. 여기, 배기량이 크든 작든 상관없이 “엔진이 주인공인 차”만 골랐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우렁차고, 각자 다른 방식으로 남성적이다.
메르세데스-AMG G 63, 도시 한복판의 V8 선언
G 63은 단순한 SUV가 아니다. 도로 위에서 ‘덩치’가 곧 메시지가 되는 차다. AMG 4.0리터 V8 바이터보는 최고출력 585마력, 최대토크 86.7kg·m를 내세우며, 이 차가 왜 굳이 조용할 필요가 없는지를 스펙만으로 설명한다. 사각형 차체와 직각으로 자른 실루엣은 이미 소리 이전에 시선을 선점하고, 그 다음은 시동 버튼 하나로 끝난다. 출발 직후에는 무게감이 지배하지만, 토크가 붙는 순간부터는 “벽이 움직인다”는 느낌으로 바뀐다. 전동화가 ‘효율’이라면, G 63은 ‘의지’다. 누군가는 비효율을 비난하겠지만, 이 차를 선택하는 사람들은 대개 그 비효율까지 포함해 ‘존재감’으로 산다.
포르쉐 911 GT3, 고회전 자연흡기의 마지막 문장
GT3의 매력은 단순히 빠르기 때문이 아니다. 이 차는 엔진이 어디까지 ‘노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교본이다. 포르쉐코리아가 밝힌 4.0리터 6기통 자연흡기 수평대향 엔진은 510마력(375kW), 최대토크 45.9kg·m. 숫자만 보면 요즘 터보 스포츠카들과 비교해 토크가 압도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GT3는 그 약점을 ‘회전’으로 뒤집는다. 저회전에서 얌전한 척하다가, 6,000rpm 이후부터는 마치 다른 엔진이 들어간 것처럼 목소리가 바뀐다. 전기차가 “한 번에 쭉” 밀어붙인다면, GT3는 “한 단계씩 올라가며” 운전자를 끌어올린다. 그래서 이 차의 팬들은 가속보다 ‘과정’을 소유한다.
렉서스 LC 500, V8을 ‘예술’로 만드는 방식
LC 500은 슈퍼카처럼 요란하게 굴지 않는다. 대신 고급 쿠페답게, ‘잘 만든 V8’이 얼마나 품위 있게 광폭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국내 출시 당시 공개된 제원 기준 5.0리터 자연흡기 V8은 최고출력 477마력, 최대토크 55.1kg·m. 여기서 핵심은 “자연흡기 5.0”이라는 구성 자체다. 터보가 지배하는 시대에, 흡기량으로 밀어붙이는 엔진은 페달 입력과 회전 상승이 더 정직하다. 가속이 거칠게 튀지 않고 선형적으로 쌓이며, 배기음은 과장된 폭발음이 아니라 두툼한 저음으로 공간을 채운다. LC 500은 ‘상남자’라는 단어를 소리로만 증명하지 않는다. 엔진을 대하는 태도, 끝까지 남겨두고 끝까지 다듬는 고집, 그 자체가 남성적이다.
마세라티 MC푸라, V6로도 충분히 우렁찰 수 있다는 증명
배기량이 크지 않으면 ‘우렁차지’ 못할까? MC20은 그 편견을 무너뜨린다. 핵심은 네투노(Nettuno) V6 90° 엔진. 마세라티 공식 제원에 따르면 최고출력 630HP, 최대토크 730Nm. 여기서 소리의 질감은 단순 배기량이 아니라 ‘엔진의 캐릭터’가 만든다. MC20의 엔진은 고회전으로 몰아칠 때 날카로워지고, 저회전에서 터보 토크로 차체를 밀어붙일 때는 묵직하다. 또 한 가지, 미드십 레이아웃이 만드는 체감이 크다. 운전석 바로 뒤에서 기계가 숨 쉬는 느낌은, 전기차가 줄 수 없는 종류의 긴장감이다. 조용함이 편안함이라면, MC20은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살아있는 감각’을 택한 결과물이다. 그리고 MC20의 계통을 잇는 MC푸라가 그 주인공이 된다.
메르세데스-벤츠 G 400 d, “디젤 토크”는 아직 현역
요란한 배기음만이 상남자의 조건은 아니다. 때로는 ‘소리보다 힘’이 더 잔인하게 남성적이다. G 400 d는 3.0리터 직렬 6기통 OM656 디젤로 최고출력 330마력, 최대토크 71.4kg·m를 내세운다. 디젤의 매력은 회전수를 끌어올려 환호를 얻는 방식이 아니라, 낮은 구간에서부터 “잡아당겨 끌고 가는” 방식이다. 특히 무거운 차체를 가진 G-클래스에서 이 토크는 숫자 이상의 체감으로 바뀐다. 전기차의 즉각적인 토크가 ‘매끈한 직진’이라면, 디젤 토크는 ‘거친 견인’에 가깝다. 그리고 그 감각은 아이러니하게도 전동화 시대에 더 희귀해졌다.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
랜드로버 디펜더 OCTA, ‘오프로더’가 슈퍼카를 놀리는 순간
디펜더는 원래 험로에서 강했다. 그런데 OCTA는 그 “강함”을 소리와 속도로 과장해버린, 거의 장르 파괴에 가까운 디펜더다. 핵심은 4.4리터 트윈터보 마일드 하이브리드 V8. 최고출력 635PS(약 626hp), 최대토크 750Nm(국내 표기 76.5kg·m)까지 찍는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4.0초. 이 수치가 더 미친 이유는, 이 차가 가벼운 스포츠카가 아니라 ‘거대한 디펜더 110’이기 때문이다.
OCTA가 상남자적인 건 단순히 V8이라서가 아니다. “험로용”이라는 명분 아래, 일상에서 과할 정도로 강력한 출력을 허락받았다는 점이 더 노골적이다. 게다가 디펜더 특유의 직립 실루엣과 두꺼운 패널, 높은 시야는 속도를 낼수록 더 ‘무식하게’ 느껴진다. 전기 SUV가 조용히 빠르다면, 디펜더 옥타는 빠른데 굳이 숨기지도 않는다. 엔진의 굵은 저음과 터보의 압력이 한 덩어리로 밀려오고, 그 힘이 바퀴를 통해 땅에 꽂히는 순간 “이건 원래 이러면 안 되는 차 아닌가?”라는 감탄이 튀어나온다. 오프로더의 형상을 하고도 슈퍼카 영역을 건드리는 그 무례함. 바로 그 무례함이 OCTA의 매력이고, 이 라인업에 들어갈 자격이다.
육동윤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ydy332@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