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전환이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인 것은 분명하지만, 2026년 자동차 시장의 현실은 여전히 내연기관차가 주류다.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에 따르면 2025년 유럽연합(EU) 신차 시장에서 배터리 전기차(BEV) 비중은 17.4%를 기록했다. 증가세는 뚜렷했지만, 시장 전체를 장악했다고 보기에는 아직 거리가 있다. 같은 해 하이브리드가 34.5%, 가솔린과 디젤 합산 비중도 35.5%에 달했다.
이 같은 시장 현실은 대형 완성차 그룹들의 전략 수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스텔란티스는 2025년 연차보고서에서 전기차, 하이브리드, 내연기관 전반에 걸쳐 제품 포트폴리오를 확대했다고 밝히며, 시장별·고객별 수요 차이를 반영한 ‘파워트레인 선택권’ 전략을 강조했다. 공격적인 전동화 일변도에서 한발 물러나, 당분간은 내연기관과 전동화를 병행하겠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이런 흐름 속에서 푸조가 새 가솔린 엔진을 내놨다. 이름은 ‘터보 100(Turbo 100)’이다. 기존 1.2리터 3기통 가솔린 계열을 바탕으로 하지만, 소비자 불만이 컸던 ‘퓨어테크(PureTech)’ 명칭은 과감히 지웠다. 스텔란티스 산하 푸조는 새 엔진이 가치 기준 약 70%의 신규 부품으로 구성됐으며, 실린더 블록과 터보차저, 분사 시스템 등 주요 구성품을 대폭 손봤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기존 오일 속에서 작동하던 습식 벨트 대신 타이밍 체인을 적용한 점이 핵심 변화로 꼽힌다.
기술적인 개선도 적지 않다. 푸조에 따르면 터보 100은 열효율 향상을 위해 밀러 사이클을 적용했고, 높은 압축비를 바탕으로 연소 효율을 높였다. 여기에 내부 마찰 저감을 위한 새로운 밸브 타이밍 시스템, 저회전 응답성을 높이기 위한 가변 지오메트리 터보차저도 더했다. 최고출력은 5500rpm에서 101마력, 최대토크는 1750rpm부터 205Nm를 낸다. 폭발적인 성능을 내세우는 엔진은 아니지만, 일상 주행에서 충분한 응답성과 효율을 겨냥한 구성이다.
푸조가 특히 힘을 준 대목은 신뢰성이다. 회사 측은 개발 과정에서 프로토타입 엔진이 시험대에서 총 3만 시간을 소화했고, 테스트 차량은 300만km 이상을 달렸다고 밝혔다. 일부 차량은 20만km를 넘는 주행을 수행했다는 설명이다. 결국 이번 엔진은 “새로운 가솔린 엔진”이라기보다, 퓨어테크 계열을 둘러싼 내구성 우려를 정면 돌파하기 위한 성격이 짙다.
적용 차종도 이미 정해졌다. 유럽에서는 이달부터 208이 가장 먼저 터보 100 엔진을 탑재하며, 소형 크로스오버 2008도 2026년 5월부터 순차 적용될 예정이다. 전동화 흐름 속에서도 푸조가 엔트리급 핵심 볼륨 모델에 새 내연기관을 투입했다는 점은, 당분간 유럽 소형차 시장에서 가솔린 수요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판단으로 볼 수 있다.
정책 환경도 예전과는 달라졌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2025년 12월 자동차 부문 경쟁력 및 청정전환 대책을 내놓으며, 2035년부터 신차의 배출 규제를 기존 ‘사실상 100% 무배출’에서 2021년 대비 90% 감축 기준으로 조정했다. 즉, 완성차 업체들은 계속해서 대폭적인 배출 저감을 이뤄야 하지만, 내연기관 판매가 법적으로 완전히 ‘제로’가 되는 구조에서는 한발 물러난 셈이다. 업계 입장에서는 일부 내연기관 또는 하이브리드 모델을 중장기적으로 더 유지할 숨통이 트인 변화다.
육동윤 글로벌모빌리티 기자 ydy332@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