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아우토반의 이른 새벽. 한쪽에서는 마치 막 잠에서 깬 맹수가 근육을 풀듯이 V8 엔진이 낮게 울컥거리며 숨을 고른다. 반대편에서는 가만히 움츠린 차가 대기한다. 정확한 타이밍에, 정확한 각도로 튀어나올 준비를 마친 외과의의 손놀림 같다. 고성능 럭셔리카 세계에서 메르세데스-AMG와 BMW M의 대결은 늘 이런 그림으로 시작된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M이 정밀함이라면, AMG는 열정이다.” 이 싸움은 마력 수치의 문제가 아니다. 철학의 차이다. 그리고 그 철학은 전동화 시대에도 여전히 살아 있다.
서킷에서 태어난 두 개의 성격
AMG와 M은 모두 레이스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태생부터 결이 달랐다. 메르세데스-AMG는 1960년대 말, 두 명의 메르세데스 출신 엔지니어가 차린 작은 공방에서 시작됐다. 한스 베르너 아우프레히트와 에르하르트 멜허는 “세단으로 레이스에서 이길 수 있다”는 고집 하나로 엔진을 뜯고 조였다. 그 결과는 내구 레이스의 연승이었다. 대기업의 시스템 밖에서 태어난 AMG는 언제나 조금 거칠고, 조금 과했다. 그리고 그 과함이 매력이 됐다.
BMW M은 다르다. 1972년 BMW 모터스포츠 부서로 출범한 M은 처음부터 조직적이었다. 목표는 명확했다. 서킷에서 검증한 기술을 도로 위로 옮기는 것. 3.0 CSL과 M1을 거쳐 M3, M5로 이어지는 계보는 ‘밸런스’라는 단어로 요약된다. BMW M은 언제나 빠르지만, 동시에 정교했다. 감정보다는 논리가 먼저였다.
AMG를 상징하는 문장은 단순하다. “One Man, One Engine.” 엔진 하나를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진다. 조립자의 서명이 붙은 명판은 장식이 아니다. AMG는 지금도 엔진을 ‘만든다’고 말한다. 그 결과 AMG의 파워트레인은 항상 과잉이다. 토크는 풍부하고, 반응은 즉각적이며, 사운드는 숨기지 않는다. 가속 페달을 밟는 순간, 차는 이유를 묻지 않고 앞으로 튀어나간다. AMG는 언제나 운전자에게 말한다. “느껴라.”
BMW M은 반대로 묻는다. “조종할 수 있는가?”
M 모델은 운전자를 주인공으로 세운다. 스티어링은 날카롭고, 차체는 손끝의 미세한 입력에도 반응한다. 힘은 선형적으로 전달되고, 회전수는 끝까지 끌어올리고 싶어진다. BMW M의 배기음은 AMG처럼 포효하지 않는다. 대신 날카롭게 찢어진다. 이 차는 소리를 들려주기보다, 코너에서 실력을 증명한다.
AMG에 타는 순간, 연출이 시작된다. 가죽과 알루미늄, 그리고 스피커와 배기에서 터져 나오는 사운드. AMG GT든 G63이든, 출발과 동시에 시트에 몸이 박힌다. 변속 때마다 ‘펑’ 소리가 터지고, 엔진은 일부러 존재감을 과시한다. 덩치는 크지만, 주저함은 없다. AMG는 언제나 운전자에게 흥분을 강요한다.
BMW M은 다르다. 평소엔 조용하다. 하지만 코너가 나타나는 순간, 차는 본색을 드러낸다. 노면 정보는 그대로 손에 전해지고, 타이어가 미끄러지는 순간조차 계산된 연출처럼 느껴진다. AMG가 매번 폭죽을 터뜨린다면, M은 조용히 점수를 쌓는다. 분노 대신 긴장, 과시 대신 집중. 이것이 M의 세계다.
AMG GT는 AMG 철학의 결정체다. 긴 보닛 아래 자리한 4.0ℓ V8은 577마력을 쏟아내고, 가속과 사운드는 공연에 가깝다. 하이브리드 모델 GT 63 S E 퍼포먼스는 800마력이 넘지만, 여전히 AMG답게 과격하다. EQE 53 같은 전기 모델조차 가상 사운드를 통해 ‘AMG다운 감정’을 유지한다.
BMW M의 상징은 M3다. 최신 M3 컴페티션은 500마력을 넘지만, 더 인상적인 건 차체의 응답성이다. M5는 고출력 세단의 교과서이고, M2 CS는 순수주의자들의 장난감이다. 전동화 시대를 대비한 iX3 M 역시 ‘빠른 전기 SUV’가 아니라 ‘조종하는 전기차’를 목표로 한다.
AMG와 M의 대결은 승자를 가리는 싸움이 아니다. 하나는 본능을 자극하고, 다른 하나는 기술로 설득한다. 전기차 시대가 와도 이 대립은 사라지지 않는다. 연료가 아니라 태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배기음이든 전류든, 중요한 건 운전자를 설레게 만드는 불꽃이다. 그리고 그 불꽃은 여전히, AMG와 M 사이에서 가장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