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평원부터 사막과 정글까지, 전 세계 도로를 달리는 픽업트럭은 단순한 자동차를 넘어 각 지역의 문화와 생활상을 담는 상징이 됐다. 한 해 전 세계 약 600만대 이상 팔리는 픽업트럭 시장은 여전히 성장세다. 각 지역마다 고유한 베스트셀러 모델도 분명 있다. 그들의 실용적·문화적 가치를 조명한다.
북미 – 승리의 아이콘, 포드 F-150과 실버라도
미국과 캐나다를 아우르는 북미 시장에서는 포드 F-150이 불패 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포드에 따르면 F-시리즈는 무려 50년 연속 북미 최고의 픽업트럭 판매를 기록하며 명실상부한 아이콘으로 자리했다. 2023년에는 글로벌 시장에서 90만여 대를 판매해 14.5% 점유율을 확보했고, 미국 전체 신차 판매의 약 80%를 차지하는 트럭/SUV 시장을 주도했다. 경쟁 모델인 쉐보레 실버라도도 만만치 않은 판매량을 자랑한다. 이러한 픽업트럭의 인기 비결은 강력한 견인능력과 공간 활용성 덕분이다. 미 중서부 대평원의 농장·건설현장에서는 물론 교외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는 소비자들이 짐을 싣고 캠핑을 떠날 때도 F-150은 든든한 파트너다.
남미 – 비옥한 대지의 효자, 토요타 하이럭스와 피아트 스트라다
남아메리카에서는 토요타 하이럭스가 전통적인 인기를 누린다. 특히 농업·광업 비중이 높은 브라질·아르헨티나 등지에서 이 차는 오지와 도시를 막론하고 널리 사용된다. 2023년 라틴아메리카 판매 순위를 보면, 피아트 스트라다와 하이럭스가 각각 약 12만8348대, 12만7400대로 최상위를 차지했다. 스트라다는 브라질 등에서 저렴한 소형 픽업으로 인기가 높고, 이 차는 우수한 신뢰성과 내구성 덕분에 광활한 팜파스(Pampas) 대지의 농장, 안데스 산맥 주변 교외 농촌까지 폭넓게 사용된다.
유럽 – 엄격한 규제 속의 실용, 레인저와 하이럭스
유럽은 자동차 시장에서 픽업트럭 비중이 크지 않지만, 특정 소비층 사이에서 꾸준한 수요가 있다. 특히 농장과 건설 현장, 그리고 취미로 오프로드를 즐기는 소비자들이 포드 레인저와 토요타 하이럭스를 선호한다. 영국을 포함한 유럽 전역에서는 최신 기술을 적용한 레인저가 유럽 판매 1위를 기록하고 있는데, 업계 전문가는 “레인저가 유럽 베스트셀링 픽업”임을 강조한다. 유럽에서는 환경·안전 규제가 엄격해, 제조사들이 하이브리드나 전동화 모델을 도입하는 추세다. 실제로 토요타는 하이럭스에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적용해 효율성을 높였고, 폭스바겐은 레인저와 협업한 신형 아마록(Amarok)을 들여왔다.
아시아 – 격동하는 시장, 하이룩스와 그룩스의 도전
아시아에서도 토요타 하이룩스는 강력한 존재감이다. 동남아시아(특히 태국·인도네시아)에서는 하이룩스와 이스즈 D-맥스 등이 산업용·레저용으로 널리 쓰인다. 한편, 중국과 인도 등에서는 장성자동차(Great Wall Motor)와 타타(Tata) 같은 현지 업체들의 픽업 신모델들이 시장에 속속 등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의 포에르(Great Wall Poer)와 가즈(Gaz) 차량이 인기 상승세를 타고 있으며, 미국 시장에서는 토요타 타코마가 미니 풀사이즈 대표로 자리 잡고 있다.
중동 – 사막의 제왕, 하이룩스의 독주
중동 지역에서는 험준한 사막과 광활한 사막도로를 누비는 토요타 하이룩스가 사실상의 표준 픽업이다. 현지 시장에서 이 차는 ‘사막의 제왕’으로 불리는데, 북아프리카 사하라부터 아라비아 사막까지 중동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이용된다. 예멘·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는 현지인과 석유 산업 종사자들이 튼튼한 4륜구동 차체와 넉넉한 적재공간, 연비 효율성 덕분에 이 차를 즐겨 타며, 심지어 전쟁·구호 현장에서도 험로 주행용으로 도입한다. 적재능력 면에서는 미국산 대형 트럭보다 작지만, 좁고 거친 길이 많은 중동환경에서는 작은 체구의 듀티 사이즈 픽업이 오히려 유리하다.
아프리카 – 튼튼함이 생명, 하이룩스의 활약
아프리카 대륙 역시 토요타 하이룩스 천하다. 사하라·사반나·준사막 등 가혹한 지형이 많아 이 차의 ‘신뢰성과 견고함’은 생명을 살리는 무기다. 실제로 통신재단과 함께 하는 보건 프로젝트에서는 험준한 레소토 산간마을까지 마약 검사를 나르는 것이 이 차의 몫이었다. 남아공과 케냐 등 자동차 산업이 발전한 국가에서는 닛산과 포드의 픽업 모델도 일부 생산 및 판매되고 있어, 지역산업의 성장도 이끌고 있다.
오세아니아 – 아웃백의 파트너, 하이룩스와 레인저
오세아니아(호주·뉴질랜드)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광활한 오지와 농업지역이 픽업트럭 수요를 부추긴다. 토요타 하이룩스와 포드 레인저는 지난 수년간 호주 판매 1,2위를 다투었고, 특히 하이룩스는 한때 오스트레일리아 전체 차량 판매 1위에 오르기도 했다. ‘Focus2Move’ 자료에 따르면 하이룩스는 전세계적으로도 판매 3위를 기록했는데, 이는 몽골 고비사막부터 호주 오지까지 하이룩스가 대륙을 평정하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 – 틈새에서 정체성으로, 무쏘와 타스만
한국은 오랫동안 픽업트럭의 불모지로 여겨졌다. 도심 위주의 도로 환경, 엄격한 자동차 분류 체계, 그리고 승용차 중심의 소비문화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픽업 시장은 ‘틈새’에서 출발해 점차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는 과정을 밟아왔다. 그 중심에는 KGM 무쏘와, 이제 막 문을 두드리기 시작한 기아 타스만이 있다. 디자인, 퍼포먼스, 실용성까지 어디 하나 빠지는 곳이 없다.
이제 판은 달라지고 있다. 기아가 준비 중인 타스만(Tasman)은 한국 픽업 시장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꿀 가능성을 지닌 모델이다. 글로벌 전략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는 KGM 무쏘는 유럽에 이어 북미·호주·중동까지 확장해 나갈 가능성을 아주 배제할 수는 없다.
육동윤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ydy332@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