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 내내 야속할 정도로 빗방울이 차창을 두드렸다. 컨버터블의 꽃이라 불리는 오픈 에어링을 마음껏 누리기 아쉬운 날씨였지만, 마세라티의 럭셔리 오픈톱 스포츠카 '그란카브리오 트로페오(GranCabrio Trofeo)'는 굳이 루프을 열지 않아도 존재만으로 주변을 압도했다.
그란카브리오는 타인의 플랫폼이나 엔진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100% 마세라티 순수 독자 기술로 완성해낸 하이퍼포먼스 그랜드 투어러(GT)다. 강렬한 오렌지빛 외장 컬러와 대비를 이루는 화사한 실내, 그리고 마세라티 F1 기술의 결정체인 '네튜노' 엔진을 품은 매혹적인 삼지창 컨버터블의 매력을 살펴봤다.
먼저 외장 디자인을 보면, 무채색 세단과 SUV가 즐비한 비 내리는 도로 위에서 오렌지 컬러의 마세라티 그란카브리오 트로페오는 단연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한다.
전면부는 지면에 바짝 엎드린 낮고 넓은 '로우 앤 와이드' 스탠스가 인상적이다. 라디에이터 그릴 중앙에는 마세라티의 영원한 상징인 트라이던트 로고가 큼직하고 강렬하게 자리 잡고 있으며, 새롭게 다듬어진 날렵한 수직형 LED 헤드램프는 예리하면서도 스포티한 룩을 완성한다.
측면부는 길게 늘려진 보닛과 우아한 루프 라인이 빚어내는 측면 비율은 고전적인 GT의 황금 비율 그 자체다. 볼륨감 넘치는 펜더 뒤쪽에 새겨진 마세라티 고유의 시그니처 3구 에어벤트와 트로페오 전용 배지는 고성능 특화 모델임을 시각적으로 증명한다. 캔버스 소재의 직물 소프트톱은 완성도가 정점에 달했다.
시속 50km/h 이하의 속도라면 주행 중에도 터치 한 번으로 단 14초 만에 빠르고 조용하게 개폐된다. 지붕을 닫았을 때조차 매끄러운 쿠페의 루프라인을 그대로 유지하는 디자인적 완성도가 유독 매력적이다.
후면부는 날렵하고 입체적인 테일램프가 차체를 한층 넓어 보이게 한다. 범퍼 하단에는 과감하게 노출된 카본 디퓨저와 좌우로 쌍을 이룬 대구경 트윈 팁 듀얼 머플러가 배치돼 공격적이고 역동적인 분위기를 완성한다. 특히, 시동을 거는 순간 터져 나오는 매력 넘치는 배기 사운드는 가공할 퍼포먼스를 기분 좋게 암시한다.
이어서 도어를 열면 강렬한 외관과 대비되는 밝은 베이지 톤 실내가 화사하고 기품 있어 보인다. 최고급 천공 나파 가죽으로 섬세하게 마감된 내장재와 헤드레스트에 양각으로 새겨진 삼지창 로고는 럭셔리한 분위기를 극대화해준다.
실내 중심축은 최신 디지털 UX가 담당한다. 12.2인치 디지털 클러스터와 센터페시아 상단의 12.3인치 인포테인먼트 스크린, 그 아래 위치한 8.8인치 공조 및 편의장비 전용 터치스크린이 탑형 구조로 배치돼 복잡했던 물리 버튼을 완벽히 지워냈다. 마세라티의 유산이었던 대시보드 중앙의 아날로그시계마저 다양한 그래픽 모드를 제공하는 스마트워치 형태의 디지털 디스플레이로 진화했다.
무엇보다 감동적인 부분은 공간 활용성이다. 수많은 2+2 구조의 오픈톱 모델들이 뒷좌석을 단순한 짐칸으로 치부하는 것과 달리, 그란카브리오는 비교적 넉넉한 무릎 공간과 헤드룸을 확보해 실질적으로 성인 4명이 편안하게 장거리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진정한 4인승 GT카의 가치를 증명한다.
차량을 살펴보고 본격적인 시승을 위해 그란카브리오 트로페오의 붉은 시동 버튼을 누르면, F1 레이싱 기술인 '프리챔버(Pre-Chamber)' 이중 점화 시스템이 접목된 3.0L V6 트윈터보 '네튜노(Nettuno)' 엔진이 웅장한 바리톤 음으로 깨어난다. 또 8단 변속기 및 지능형 사륜구동(AWD) 시스템 조합으로 최고출력 550마력, 최대토크 66.3kg.m의 강력한 파워를 낸다. 시속 0-100km/h까지 가속성능은 단 3.6초면 충분하고, 최고속도는 316km다.
2톤에 육박하는 육중한 차체에도 불구하고, 가속 페달에 살짝 힘을 실어주는 것만으로 550마력의 출력이 네 바퀴를 통해 아스팔트로 가차 없이 쏟아진다. 빗길 고속도로와 굽이진 와인딩,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도심 구간에서 경험한 그란카브리오 트로페오의 주행 질감은 다재다능한 팔색조였다. 강력한 스펙과 달리 차체를 다루는 감각은 기대 이상으로 안정적이다. 똑똑한 AWD 시스템이 젖은 노면에서도 타이어를 아스팔트에 밀착시키며 흔들림 없는 트랙션을 선사하고, 날카로운 스티어링 응답성과 든든한 브레이크 제동력은 운전자에게 확실한 자신감을 부여한다.
특히, 상황에 따라 명확하게 성격을 바꾸는 4가지 드라이브 모드의 감각 차이가 인상적이었다. 먼저 시동을 걸면 기본으로 설정되는 'GT 모드'는 그란투리스모라은 차명에 가장 부합한다. 일상적인 도심 주행이나 고속 항속 주행에서 가장 부드러운 스로틀 반응과 적절한 승차감을 제공하며, 여유로운 출력을 바탕으로 우아하고 평온한 드라이빙을 완성한다.
'컴포트(Comfort)'에서는 노면 상태가 불량하거나 잔진동을 극도로 억제하고 싶을 때 적합하다. 서스펜션의 댐핑을 유연하게 풀고 엔진 배기음을 한층 세련되게 억제해 과속방지턱이나 불규칙한 요철 구간에서도 대형 럭셔리 세단 수준의 안락함을 제공한다. 이어서 '스포츠(Sport)' 모드로 바꾸면 스티어링 휠은 즉시 묵직해지고 서스펜션은 한층 단단해진다. 가속 페달 응답성도 예리해지고, 튜닝된 마세라티 고유의 바리톤 배기음이 묵직하게 실내를 채우며 스포츠카 본연의 아드레날린을 자극한다.
가장 하드코어한 '코르사(Corsa)' 모드는 트랙 주행까지 고려한 극한의 퍼포먼스 모드다. 서스펜션 지상고가 낮아지고 차체가 극단적으로 노면에 밀착된다. 네튜노 엔진은 터보랙 없이 직관적으로 반응하며, 변속 시 툭툭 차고 나가는 변속 충격과 날카로운 배기음이 어우러져 와일드하고 야성적인 퍼포먼스의 진수를 선보인다.
빗줄기가 잠시 잦아들었을 때 했던 오픈 에어링 역시 고도의 기술력이 빛났다. 헤드레스트 하단에서 따뜻한 바람을 불어주는 '넥 워머(Neck Warmer)'와 실내 와류를 막아주는 '윈드 디플렉터' 덕분에 쾌적함을 유지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부분은 톱을 닫았을 때의 정숙성(NVH)이다. 다중 레이어 구조의 캔버스 소프트톱은 터널 공명음이나 고속 주행 시 풍절음을 하드톱 쿠페 수준으로 차단한다.
폭발적인 성능과 날카로운 핸들링, 노면을 찍어 누르듯 강력한 브레이크 시스템, 인상적인 승차감과 마세라티 고유의 배기사운드까지 팔색조 매력을 가졌지만 날씨 영향으로 온전히 그란카브리오 트로페오의 진면목을 느끼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한편, 마세라티 그란카브리오 트로페오는 이탈리안 특유의 관능적인 스타일링과 독자 개발 네튜노 엔진의 폭발적인 성능, 4명이 함께 탈 수 있는 럭셔리 GT의 안락함까지 어느 하나 타협하지 않고 완벽하게 조합해 낸 명작이다. 평일에는 정숙하고 부드러운 도심형 데일리카로, 주말에는 550마력을 쏟아내는 낭만적인 오픈톱 크루저로 자유자재로 변신한다.
특히, 마세라티코리아의 파격적인 가격 조정도 눈길을 끈다. 그란카브리오 트로페오의 판매 가격은 기존 2억 9,930만원에서 1,740만원 인하된 2억 8,190만원(2026년식 기준)이다. 독보적인 4인승 하이퍼포먼스 컨버터블을 꿈꾸는 수요층에게 마세라티 그란카브리오 트로페오는 낭만 가득한 선택지가 될 것이다.
최태인 글로벌모빌리티 기자 choiti1991@g-enews.com